클로에 : …있잖아, 방금 그거 조금 신경 쓰이지 않았어?
서머 바자르로 향하면서 클로에와 나는 납득이 가지 않는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클로에 : 아무리 곤란하다 해서 초면인 사람에게 그런 부탁을 할까…?
아키라 : 역시 그렇죠. 여러모로 부자연스럽다고 할까….
보통 만난 지 얼마 안 된 상대에게 값비싼 물건을 사 달라고 조르곤 할까?
유복해 보이는 라스티카를 골라서 말을 건넨 것도 묘하게 마음에 걸린다.
클로에 : 루루 씨, 정말로 진주를 떨어뜨린 걸까?
아키라 : 뭔가 잘못됐을 가능성도 있어 보이죠?
현시점에서 '사기'라고 입에 담는 것은 아무래도 말이 험한 것 같아서 우리는 단어를 고르며 힐끔힐끔 라스티카 쪽을 보았다.
라스티카 : 그녀는 참 어찌할 바를 몰랐지, 가엾게도. 어서 멋진 진주를 찾아서 그 아름다운 사람을 도와주자.
레녹스 : 진주를 손에 넣으면 그녀도 안심하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겠지.
리케 : 여행지에서도 남을 도울 수 있다니 멋진 일입니다.
루틸 : 라스티카 씨 같은 친절한 사람을 만나서 루루 씨는 운이 좋았네요.
아키라 : (윽…)
남을 돕는 일이라 믿고 의심치 않는 순수함에 우리는 기가 꺾였다. 천성이 다정하고 선량한 그들은 조금도 루루 씨를 의심하지 않았다.
아키라 : (도저히 말을 꺼낼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네…)
클로에 : …으, 으음. 뭐, 우리가 너무 걱정한 걸지도 모르고.
아키라 : 그, 그렇네요.
나와 클로에는 타이르듯 웃고 작은 불안을 가슴에 묻었다.
서머 바자르는 바다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열리고 있었다.
늘어선 가게는 화려하고 활기차고 수상해서 장난감 상자를 뒤엎은 것 같은 복작거리는 매력으로 가득했다.
호기심에 못 이겨 우리는 갓 상경한 사람처럼 바자르의 가게를 구경하며 돌아다녔다.
클로에 : 저기 이 피어싱, 히스 눈 색하고 같아! 선물로 좋겠어.
루틸 : 굉장히 잘 어울릴 것 같아. …으음, 매혹의 피어싱? 착용하면 인기가 많아진대.
클로에 : 과, 관둘까…. 히스, 난감해질 거야.
리케 : 이 지팡이, 고양이 모양을 하고 있어요.
레녹스 : 어떤 효과가 있는 걸까.
가게 주인 : 시험 삼아 휘둘러 봐.
리케 : 그래도 될까요?
레녹스 :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 내가 휘두르지.
리케 : …? 달라진 점은 없는 것 같은데요.
레녹스 : …야옹.
리케 : 어?
레녹스 : 냐아, 야옹.
리케 : 저기, 이 지팡이는 뭔가요!?
가게 주인 : 일시적으로 고양이 말밖에 할 수 없게 되지. 뭐, 금방 풀릴 거야.
리케 : 레녹스, 괜찮아요?
레녹스 : 냐앙.
노파 : 거기 형씨. 보아하니 진주를 찾고 있는 거 아닌가?
어느 가게를 지나가던 그때, 쉰 목소리가 라스티카를 불러 세웠다.
점원으로 추정되는 검은 로브를 푹 눌러쓴 할머니가 히죽 웃고 있었다.
라스티카 : 맞습니다. 어떻게 알고 계신 건가요?
노파 : 마법사에게는 뭐든지 다 보이지. 진주라면 이걸 사면 확실하네. 보기 힘든 상등품이야.
라스티카 : ….
라스티카는 뭔가를 깨달은 듯이 할머니를 갑자기 똑바로 쳐다보았다. 하지만 그것은 찰나로 다음 순간에는 지갑에서 금화를 꺼내고 있었다.
라스티카 : 그러면 그걸 사도록 하죠.
아키라 : (흔쾌히 금화를 몇 개나…. 정말 괜찮은 걸까…?)
마음을 졸이면서 나는 가게 앞에 놓인 상품을 들여다보았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물건이 진열된 가운데, 아름다운 조개껍데기에 시선이 간다.
아키라 : 예쁘다. 일곱 빛깔로 반짝이고 있어….
노파 : 안목이 높구먼. 그것은 마법의 소라 피리야. 불어서 소리를 내면 단 한 번만 바다 생물들이 모여들지.
아키라 : 와아, 낭만이 있어서 멋지네요…!
라스티카 : 마음에 드셨다면 선물해 드리겠습니다.
노파 : 그 피리는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귀중품이라서 말일세. 가격도 꽤 나갈 텐데 괜찮겠나?
아키라 : 그, 그럴 수가, 괜찮아요. 라스티카의 마음만으로 기뻐요.
아키라 : (라스티카는 금전 감각도 둔하다고 할까, 대범하다고 할까…. 클로에의 고생이 짐작이 가…)
서머 바자르에서 나와 해변으로 돌아오자 피가로와 미스라와 브래들리의 모습이 보였다.
피가로 : 모두 돌아온 모양이야. 다들, 여기야, 여기.
브래들리 : 미스라, 아까부터 뭘 들고 있는 거냐?
미스라 : 이거 말입니까? 글쎄요, 뭘까요. 흐물흐물해서 재미있기에 그냥 들고 있었는데요.
아키라 : (혼자서도 충분히 눈길을 끄는데 셋이 나란히 있으니 엄청나게 눈에 띄네…)
용모가 단정할 뿐만 아니라 셋 다 각자 묘한 박력이 있다. 장르가 다른 잡지 모델을 한데 모아 놓은 듯한 존재감이다.
만약 아는 사이가 아니라면 그 미모에 넋을 잃고 바라보거나 겁에 질려 허겁지겁 길옆으로 비켜서거나 했을 것이다.
피가로 : 장바구니를 내려 들고 있다는 건 서머 바자르에 다녀온 거야?
아키라 : 네. 산책만 할 생각이었는데 조금 사정이 생겨서요.
피가로 : 사정이라니?
리케 : 사람을 돕는 일입니다.
브래들리 : 너희는 휴양지까지 와서 남을 돕고 있는 거냐. 아주 한가한 놈들이군.
미스라 : 괜찮아 보이는 주술 도구는 팔고 있던가요? 원한이 깊게 깃들어 있는 듯한 물건이 필요한데요.
아키라 : 그, 글쎄요. 아쉽게도 전문가가 아니라 주술 도구의 좋고 나쁨은 잘….
레녹스 : 주술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묘한 도구는 팔고 있었지.
브래들리 : 묘하다고?
레녹스 : 아니… 별것 아니다. 그쪽은 계속 해변에 있었던 건가?
브래들리 : 나는 드러누워서 일광욕했지.
리케 : 혼자서 잠만 잤던 건가요? 세상에, 불쌍해라….
브래들리 : 마음대로 동정하지 말라고! 아무한테도 방해받지 않고 드르렁 코를 골 수 있어서 기분 최고니까.
미스라 : 잘 수 있다고 자랑하는 겁니까? 열받네요….
아키라 : 미스라와 피가로는 뭐 하고 있었나요?
미스라 : 바다에 있었습니다. 떠 있는 게 편안해서 한동안 그대로 먼바다로 떠내려갔죠.
아키라 : (노는 방식이 독특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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