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쪽의 마법사와 남쪽의 마법사는 함께 동쪽 국가의 란즈베르크령으로 가게 되었다.
식인 마녀라 불린 비앙카와 그녀의 저주…. 여정의 출발은 무거운 분위기에 휩싸여 있다.
그래도 클로에가 준비해 준 늠름한 의상은 어린 마법사들을 기쁘게 했다.
히스클리프 : 클로에는 대단해…. 마음을 굳게 먹고 임해야겠어.
루틸 : 폭동이 일어날 것 같다고 했더니 군인분들의 제복 같은 옷을 만들어 줬어.
시노 : 서로 다른 옷을 입고 있는 것보다 무슨 일이 생겼을 때는 위압하기 더 쉬울 테니까.
시노 : 잘 어울려, 히스.
히스클리프 : 됐어…. 기쁘지만 놀러 가는 게 아니잖아.
파우스트 : 그 말이 맞아.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도착한 뒤에는 내 분부에 따르도록 해.
나는 파우스트를 흘깃 엿보았다. 전날까지 짓고 있던 울적한 표정과 달리 다부진 눈빛을 하고 있다.
파우스트의 태도에 당황한 뒤, 시노가 씩 웃었다.
시노 : 지금까지 교육을 빼먹어 놓고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나는 훈육에 손이 가는 학생이라고.
파우스트 : 뭘 으스대는 거지….
히스클리프 : 기쁜 거지, 시노? 파우스트 선생님의 수업을 계속 받고 싶어 했으니까.
이번에는 파우스트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살짝 멋쩍은 듯이 시노가 흥 하고 콧방귀를 뀐다.
시노 : 히스가 하도 당신을 칭찬해서 말이야. 실력 좀 한번 보려고.
네로 : 뭐 어때. 선생도 학생도 서로 칭찬을 받았으면 좋겠네.
네로가 웃으며 시노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나는 미소를 머금고 동쪽의 마법사들을 바라보았다.
천천히 심호흡하는 것처럼 그들의 분위기가 조금씩 풀려 가는 것을 느낀다.
싹트기 시작한 인연이 풀어지는 일이 없기를…. 기도하면서 우리는 출발했다.
아키라 : 여기가 처형장이 된 해바라기밭….
탁 트인 푸른 하늘 아래, 해바라기가 온통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평화 그 자체를 풍경으로 옮겨 놓은 듯한 선명하고 양기로운 색감이다.
그런데 어딘가 기묘하고 무섭다. 바람에 흔들리는 커다란 해바라기꽃이 사람 얼굴처럼 보여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가만히 말없이 밭에 늘어서서 하늘하늘 흔들리고 있다.
미틸 : 해바라기가 잔뜩 피어 있어. 눈에 띄어서 멋지고 예쁜 곳이네요. 피가로 선생님.
피가로 : 그러게. 하지만 무턱대고 행동해선 안 돼. 너희는 저주에 면역이 없으니까.
시노 : 보호가 지나치군. 나와 별로 몇 살 차이도 나지 않을 텐데.
피가로 : 전투를 많이 겪은 너와는 달라. 남쪽의 마법사는 원래 저주는 잘 못하는 분야이기도 하고.
시노 : 흥.
미틸 : …전투를 많이 겪다니….
미틸 : …. 좋겠다….
루틸 : 왜 그래, 미틸?
미틸 : 아뇨! 아무것도 아니에요!
레녹스 : 저쪽에…. 사람이 모여 있는 것 같습니다.
피가로 : 정말이네.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모양이야.
마을 사람 : 영주님 명령이라 해도 그냥 물러날 수는 없습니다! 이대로 가면 땅 전체가 저주받을 거라고요!
마을 사람 : 당신들은 못 봤잖아! 기분 나쁘게 흔들흔들 움직이는 처형대 밧줄을…!
영주의 관리 : 진정해라! 불을 붙이면 더욱더 기분 나쁜 현상이 일어날지도 몰라!
영주의 관리 : 이제 곧 영주님께서 부르신 현자의 마법사님들이 오실 거다! 그때까지….
마을 사람 : 마법사 따위 믿을 수 있겠냐! 이대로 가다간 식인 마녀가 되살아난다고!
마법사 따위, 라는 고함 소리에 루틸과 미틸이 희미하게 숨을 죽인다.
당차게 앞으로 나선 사람은 시노였다. 당장이라도 폭동을 일으킬 것 같은 그들을 향해 드높이 소리를 내지른다.
시노 : 머리를 숙여라! 블랑셰가의 히스클리프 님이시다. 영주의 의뢰를 받아 시찰하러 왔다.
마을 사람 : 블랑셰가의…. 예예.
시노에게 압도된 것처럼 마을 사람들이 황급히 무릎을 꿇는다. 히스클리프는 부드럽게 그들에게 말을 건넸다.
히스클리프 : 히스클리프야. 이변을 조사하고 필요하다면 현자님과 함께 대처할게.
히스클리프 : 불안하겠지만 맡겨 줬으면 해. 여기서 일어난 이변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을 말해 주지 않겠어?
온화한 히스클리프의 목소리에 마을 사람들은 평정을 되찾고 필사적으로 현재 상태를 전했다.
마을 사람 : <거대한 재앙>이 다가온 날부터 이 해바라기밭 위에 교수형 밧줄이 늘어지게 되었습니다.
마을 사람 : 이 땅에는 식인 마녀 비앙카의 전설이 있죠.
마을 사람 : 왕가의 군대가 찾아와서 퇴치하기 전까지, 마녀 비앙카는 백 명의 아기를 잡아가 먹었다고 합니다.
마을 사람 : 그 무서운 마녀가 되살아났다간…. 그렇게 생각하면 밤에도 잠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마을 사람 : 마녀의 저주가 밴 해바라기밭 같은 건 성스러운 불로 태워 버리는 게 낫습니다!
영주의 관리 : 그런 말은 지금껏 이 마을에서 살면서 한마디도 하지 않았잖나. 헛것을 본 정도로….
마을 사람 : 헛것이 아니야! 정말로 교수형 밧줄이 흔들렸단 말입니다. 믿어 주세요, 히스클리프 님!
히스클리프 : 의심하지 않아. 또 목격한 사람은….
시노 : …! 히스, 저거….
히스클리프 : …응?
루틸 : …교수형 밧줄…!
그 꺼림칙한 광경에 숨 쉬는 것을 잊었다.
선명한 풍경화 같은 해바라기밭 위에 교수형 밧줄이 축 늘어져 있다.
마른침을 삼키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교수형 밧줄이 어디서 내려오고 있는 건지 정확히는 보이지 않는다.
아무 말도 없는 묶인 밧줄이 이쪽으로 오라고 부르고 있는 것 같아서 무섭다.
마을 사람 : 저거 봐…! 식인 마녀의 저주야! 처형된 비앙카가 되살아날 거야!
시노 : 소란 피우지 마. 이까짓 거, 내 낫으로 잘라 버려 주지.
파우스트 : 멈춰.
마도구인 큰 낫을 꺼내 들고 앞으로 나서려던 시노를 파우스트가 한쪽 팔을 뻗어 제지한다.
바람에 나부끼는 답답한 앞머리 아래에서, 파우스트의 두 눈은 신기한 강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방에서 나오지 않고 우울한 듯이 눈을 내리뜨던 그와는 마치 다른 사람 같다.
파우스트 : 함부로 다가가지 마라. 예상했던 것보다 더 저주가 강해. <거대한 재앙>의 영향으로 폭주하고 있어.
마을 사람 : …윽, 역시…! 지금 당장 해바라기밭을 불태워 버려야 해!
파우스트 : 성급하게 굴지 마라. 올바른 순서대로 정화하지 않으면 땅이 저주에 오염될 거야.
파우스트 : 저주는 들러붙는다. 너희도 이 땅에는 가까이 오지 않도록 해.
파우스트 : 이제 곧 해가 질 거야. 밤이 되면 저주의 힘은 더욱 강해질 거다. 내일 아침, 정화를 행하지.
마을 사람 : 아…. 당신이 정화해 주시는 건가요? 당신은 대체….
파우스트 : …. 내가 누구든….
히스클리프 : 파우스트 선생님. 내 마법 선생님이야. 뛰어난 마법사지.
파우스트 : …히스….
당황한 기색을 드러내며 파우스트가 히스클리프를 돌아본다.
그를 마주 바라보는 히스클리프의 눈동자는 야단맞는 것을 겁내면서도 간절한 소원을 품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히스클리프 : …거짓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은 제 생명의 은인이세요.
시노도 큰 낫을 한 팔에 안으며 입꼬리를 올리고 웃는다.
시노 : 그렇다면 내 은인이기도 해. 슬슬 앞장서라고, 파우스트.
시노 : 우리 동쪽의 마법사를 챙기는 게 네 역할이잖아.
시노 : 네가 안 하면 누가 하겠어.
네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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