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녹스 : …란즈베르크령의 비앙카…?
레녹스다. 시노와 히스의 등 뒤에는 식당을 찾아온 남쪽의 마법사들이 있었다.
미틸 : 안녕하세요, 현자님!
루틸 : 동쪽의 마법사분들이 모여 계시다니 별일이네요!
피가로 : 그러게, 정말이네. 오랜만에 얼굴을 봤어. 파우스트.
파우스트 : ….
파우스트는 대답하지 않았다. 경악을 금치 못한 레녹스가 신경 쓰이는지 그를 바라보고 있다.
히스클리프 : …레녹스. 란즈베르크의 식인 마녀에 대해 뭔가 알고 있는 거야?
레녹스 : 식인 마녀라 불리는 게 란즈베르크의 해바라기밭에서 처형된 비앙카를 말하는 거라면….
히스클리프 : …아마 그 사람이 맞을 겁니다. 약 사백 년 전에 처형되었다던데….
레녹스 : …그런가. 틀림없군.
파우스트는 희미하게 숨을 삼키고 레녹스에게 물어보았다.
파우스트 : …설마 그 비앙카인가? 조모와 양친과 여동생을 소중히 아끼고 머리를 땋았던….
레녹스는 지긋이 고개를 끄덕였다. 파우스트가 말을 잇지 못하고 입을 다문다.
아키라 : …아는 분인가요?
레녹스 : 네…. 비앙카는 옛 지인입니다. 중앙의 마법사로 제 동지였죠.
히스클리프 : 동지…? 자세히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까, 레녹스?
히스클리프 : 식인 마녀…. 아니, 비앙카 씨의 저주 때문에 조용한 마을에서 폭동이 일어나려고 하거든요.
란즈베르크의 식인 마녀…. 비앙카라는 여자에 대해 레녹스는 우리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레녹스 : 비앙카는 성실하고 착하고 가족을 아끼며 꽃을 좋아하는 여자였습니다.
레녹스 : 당시 중앙 국가는 분열이 일어나 각지에서 세력 다툼이 벌어지고 있었죠. 비앙카는 작은 마을 출신으로….
레녹스 : 가족이 보다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마녀인 자신이 선두에 서서 싸워 평화로운 나라를 손에 넣겠다고.
레녹스 : 항상 그렇게 말했습니다.
레녹스는 조용히 비앙카라고 불린 마녀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레녹스가 동지라고 부른다면 파우스트나 피가로 역시 그녀와 아는 사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파우스트는 눈을 내리뜬 채 손깍지를 굳게 끼고 있을 뿐이었고, 피가로는 모르는 척 태연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루틸 : 가족을 아끼는 착한 마녀분이셨군요…. 무슨 연유로, 식인 마녀라니….
레녹스 : 우리는 인간과 손을 잡고 싸웠는데…. 어느 사건을 계기로 찢어졌어.
레녹스 : 어떤 이는 인간들을 공격하고, 어떤 이는 쫓기며 맞서고…. 어떤 이는 자취를 감추고 도망치고….
레녹스 : 마법사도 마녀도 뿔뿔이 흩어졌지. 비앙카도 그중 한 명이었다.
레녹스 : 인간의 처사를 용서할 수 없었던 그녀는 비탄에 잠겨 괴로워하며 인간을 저주하고 증오하다 자신의 저주에 삼켜지고 말았어.
레녹스 : 그녀의 소문을 듣고 그 해바라기밭에서 재회했을 때에는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것 같았지.
시노 : …자신의 저주에 삼켜지다니. 그런 일이 있는 건가.
시노가 눈살을 찌푸리고 파우스트에게 묻는다. 대답을 한 사람은 피가로였다.
피가로 : 힘이 약한 마법사들은 가끔 그래. 강한 마법사라도 그렇게 될 수 있지만.
미틸 : 어째서 힘이 약하면 저주에 삼켜지고 마는 건가요?
피가로 : 마법은 마음을 쓰는 거야. 강한 마력을 쓸 수 있는 건 확실한 마음을 스스로 억제할 수 있기 때문이지.
히스클리프 : …약하면 자아를 잃고 저주에 삼켜진다는 건가요?
피가로 : 바로 그거야. 뭐, 그건 나쁜 일이기도 좋은 일이기도 하지만.
시노 : 어째서.
피가로 : 자아를 잃어버리는 게 편할 때도 있어. 절망 속에서도 자아를 다룰 수 있는 게 꼭 행복이라고는 할 수 없지.
피가로는 파우스트를 힐끗 쳐다보았다. 파우스트가 입을 열기도 전에 레녹스가 단호하게 잘라 말한다.
레녹스 : 행복한 일입니다. 적어도 주변 사람에게는요.
피가로 :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으려나? 그래서 비앙카는 어떻게 됐어?
레녹스 : 제가 만났을 때는 이미 비앙카의 처형이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레녹스 : 마력을 다 써 버린 그녀는 교수대로 올라가 목에 줄이 걸리던 중이었죠.
레녹스 : 곧바로 말리려고 했지만 이미 늦었고….
레녹스 : 살벌할 정도로 무서운 미소를 지으며 그녀는 매달려서 돌이 되었습니다.
파우스트는 두 손을 꼭 움켜쥐었다. 고통을 견디는 것처럼 미간을 일그러뜨린다.
파우스트 : …그런가….
파우스트는 심각해 보였다. 슬픔, 증오, 자숙, 자책 등 여러 감정이 떠올랐다가 사라져 간다.
그중에는 비참한 장면을 목격한 레녹스를 향한 걱정과 미안한 마음도 포함되어 있는 것 같았다.
레녹스가 눈빛으로 알아차리고 온화하게 고개를 젓는다.
레녹스 : …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제가 아는 이야기는 이게 다입니다. 히스클리프, 네가 들은 이야기는?
히스클리프 : …란즈베르크의 영주님에게 전해 들은 바로는, <거대한 재앙>이 다가온 날부터 기묘한 이변이 일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아키라 : 기묘한 이변…?
히스클리프 : 네. 계절에 맞지 않게 해바라기가 피어나고….
히스클리프 : 거기다 그 해바라기밭 위에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교수형 밧줄이 늘어져서 하늘하늘 흔들리고 있다고 해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