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을 바꾸는 한 조각」 1화
아키라 : 벌써 해가 질 때네. 왠지 오늘은 비가 내릴 것 같아….
미스라 : …윽.
아키라 : …!? 미스라가 내려왔어…!? 괜찮아요, 미스라…!?
오즈 : 기절한 것뿐이다.
아키라 : 오즈…. 당신이 한 건가요?
오즈 : 끈질기게 시비를 걸어오니까. 밤이 되기 전에 대처했다.
아키라 : 그, 그런가요. 적어도 방으로 옮겨야….
오즈 : 내버려 둬라. 비가 내린다고 녹스는 것도 아니니. 드디어 잠들어서 본인도 좋아하고 있겠지.
아서 : 현자님, 오즈 님! 한데 모여서 어쩐 일이신가요?
아키라 : 아서….
아서 : …! 미스라가 쓰러져 있잖아!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이렇게 호되게 당하다니, 가엾기도 하지….
오즈 : ….
오즈 : 어떻게 된 걸까.
아키라 : (속여 넘겼어!?)
아서 : 방으로 데려다주죠. 오즈 님도 도와주시겠어요?
오즈 : 그러지.
아서 : 여전히 오즈 님은 다정하시군요. 미스라도 오즈 님에게 도움을 청하면 좋았을 것을….
오즈 : ….
아서 : 현자님도 그렇게 생각하시죠?
아키라 : 어, 그, 그게….
그러게요!
아키라 : 그러게요!
나는 오즈의 시선 압박에 눌려 동의해 버렸다. 내심 미스라에게 사과하면서.
오즈가 안심한 듯이 시선을 돌린다.
사실은….
아키라 : 사실은….
오즈 : 현자. 이것을 주마.
아키라 : (사탕이네…. 입막음으로 먹을 걸 줬어…)
아키라 : 가, 감사합니다.
아서 : 좋겠네요! 저도 받고 싶습니다.
오즈 : …손을 내밀어라.
아서 : 신난다!
아키라 : (세계 제일의 마법사 오즈…. 모두가 두려워하는 미스라조차 쓰러뜨릴 수 있는 힘을 지닌 무서운 사람인데…)
아키라 : (아서 앞에서는 왠지 태도가 다른 것 같아.)
아키라 : (앞으로의 일도 포함해서 오즈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자.)
「운명을 바꾸는 한 조각」 2화
아키라 : 오즈, 잠깐 괜찮을까요?
오즈 : …현자. 현자의 서 같은 걸 들고 무슨 일이지.
아키라 : 오즈에 대해 더 알고 싶거든요. 그래서 이야기를 들었으면 해서요….
오즈 : 필요 없다.
아키라 : 전 현자님처럼 저도 언제 원래 세계로 돌아갈지 몰라요.
아키라 : 그때 다음 현자님에게 전해줄 수 있도록 오즈가 하기 싫어하는 일이나 거북해하는 걸 현자의 서에 기록해 두고 싶어요.
오즈 : ….
오즈는 잠자코 나를 바라보았다. 그는 겉모습은 피가로보다 어려 보였지만 매서운 눈빛에서는 노련함이 느껴졌다.
그런가 하면 우주, 대기, 바람, 산과 같은 강대한 존재의 단순하고 무서운 무구함이 있었다.
나를 살릴지 죽일지도 간단하게 결정할 수 있는 날카롭고 붉은 눈동자는 이 세상 끝의 풍경처럼 선명하고 고요하고 아름답다.
오즈 : 들어와라. 내 방에서 듣지.
아키라 : …괘, 괜찮은 건가요? 알겠어요. 실례할게요.
아키라 : 여기가 오즈의 방….
난로가 멋있네요.
아키라 : 난로가 멋있네요.
오즈 : 그래….
아키라 : 난로 앞 의자에 앉아서 휴식을 취하는 건가요?
오즈 : 그렇지.
아키라 : 뭘 하면서 휴식을 취하나요?
오즈 : 뭘 하면서…?
오즈 : 불꽃을 바라본다.
아키라 : (정말 그것 말고는 안 하는 것 같네…)
술을 마시는군요.
아키라 : 술을 마시는군요.
오즈 : 그래.
아키라 : 난로 위에 놓으면 따뜻해지는 거 아닌가요? 그 선반에 넣어 두면 될 텐데.
오즈 : 높은 곳에 두는 버릇이 들어서.
아키라 : 어째서요?
오즈 : 낮은 곳에 놓여 있으면 아이의 손이 닿고 말지 않나.
아키라 : 아….
오즈도 침대에서 자는군요.
아키라 : 오즈도 침대에서 자는군요.
오즈 : ….
오즈 : 매번 길가에서 잠들지는 않아.
아키라 : 아, 알고 있지만 왠지 친밀감이 들어서요.
오즈 : 침대에서 자는 것만으로? 친밀감이? 나에게?
아키라 : 죄, 죄송해요….
오즈 : 아니다….
오즈는 말없이 의자에 걸터앉았다. 컵과 주전자가 둥둥 날아와 내 눈앞에서 차를 따른다.
아키라 : 아…. 감사합니다.
「운명을 바꾸는 한 조각」 3화
오즈 : 물어보고 싶다는 건 뭐지?
아키라 : 간단한 프로필을 알려 줄 수 있을까요? 나이라든가 좋아하는 거나 잘 못하는 것.
아키라 : 불편한 임무는 부탁하지 않도록 하고 싶거든요.
오랫동안 오즈는 침묵했다. 무엇을 질문했는지 잊어버릴 뻔한 그때, 시선을 떨구며 입을 연다.
오즈 : 이름은 오즈. 북쪽 국가 출신이다. 잘하지 못하는 건 없다. 좋아하는 것도.
대화가 끝나 버렸다.
아키라 : (취향이 없는 건 아닌 것 같은데. 말하기 싫은 건가…? 그런 분위기는 아닌데…)
아키라 : …마법에 대해 알려 줄 수 있나요? 세계 제일의 마법사라고 들었는데 얼마나 강한 건가요?
오즈 : 세상에서 제일이겠지. 내가 자칭한 건 아니다만.
아키라 : 으음, 이를테면 다른 마법사와 비교해서 오즈가 엄청 특히나 강한 건 뭔가요?
오즈 : 글쎄…. 날씨를 다룰 수 있는 점일까.
아키라 : 날씨를요!? 굉장한데요!?
오즈 : 좋은 면만 있는 건 아니야. 무의식적으로 끌고 다니게 됐다.
아키라 : 끌고 다니다뇨?
오즈 : 내 감정으로 날씨가 좌우되는 일이 있어. 마음이 격해지면 바람도 사나워지고 울적해졌을 때는 얼어붙은 눈보라가 세상을 가두었다.
오즈 : 몇 년간 맹렬한 눈보라가 그치지 않았을 때는 쌍둥이와 피가로에게 꾸지람을 들었지. 내가 고의로 한 것도 아닌데….
아키라 :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엄청난 재난이니까요…. 언제 그렇게 울적해지는 일이 있었나요?
오즈는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다시 입을 다물고 침울하게 창밖을 바라본다.
오즈 :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지. 돌아가라.
「운명을 바꾸는 한 조각」 4화
오즈 :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지. 돌아가라.
긴 정적 끝에 돌아온 거절은 뜻밖이었다. 나는 당황하며 오즈를 유심히 살폈다.
노곤한 듯이 입을 다문 오즈에게서 냉담한 기색은 느껴지지 않는다.
오랜 시간을 살아온 오즈와의 대화는 난해하고 신비로우며 독특하다.
얌전히 돌아가야 했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대로 침묵에 동참했다. 그의 침묵에야말로 의미가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말 없는 공간에 말이 서려 있다.
아키라 : (아…. 고개를 들었어…. 나를 보고 있지만 돌아가라는 말은 하지 않아…. 아무래도 좋다는 듯이 난롯불을 보고 있어…)
아키라 : (하지만 왠지…. 점점 온화한 얼굴이 되어 가는 것 같아…)
불이 탁탁 튀는 소리, 바람이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 여러 소리가 지나가는 시간을 오즈와 공유한다.
누군가와 있을 때의 침묵은 진정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기분 좋은 느낌마저 들기 시작한다. 오즈의 입술이 천천히 움직였다.
오즈 : …태곳적부터 적은 있었다. 인간에게도, 마법사에게도. 적을 쓰러뜨리는 사이에 마력을 얻고 강해졌지.
아키라 : 적을 쓰러뜨리면서…. 왜 오즈에게 적이 있었던 건가요? 애초에?
오즈 : 내 마력이 강했기 때문이야. 강한 마법사에게서는 강력한 돌을 얻을 수 있다. 특히 북쪽의 마법사는 힘을 얻고 싶어 하지.
아키라 : 북쪽의 마법사는 싸움을 두려워하지 않거나 무엇보다 힘을 중요시하거나 호전적인 인상이 있긴 한데요….
오즈 : 그래.
아키라 : 여기에 있는 마법사들하고도 싸운 적이 있나요?
오즈 : 그렇다. 북쪽의 마법사하고는 거의 다 싸워 봤지.
미스라나 오웬이나 브래들리하고?
아키라 : 미스라나 오웬이나 브래들리하고?
오즈 : 그래. 오웬은 나를 피해 다녔지만 미스라와 브래들리는 먼저 도전해 왔어.
아키라 : 이유는…?
오즈 : 나를 돌로 만들면 명성이 높아지기 때문이겠지. 몇 번이나 쫓아내도 덤벼들었다. …성가시게도.
아키라 : (동네 못된 꼬맹이를 상대하는 호랑이 아버지 같네…)
스노우와 화이트하고도?
아키라 : 스노우와 화이트하고도?
오즈 : 그래. 이유는 잊어버렸다만.
아키라 : 어느 쪽이 이겼나요?
오즈 : 저쪽이다. 두 사람이 덤빈 데다 나는 아직 어렸지.
아키라 : (스노우와 화이트도 인정사정없네…)
피가로하고도?
아키라 : 피가로하고도?
오즈 : 피가로와는 싸운 적이 없군. 그는 나와 마력으로 충돌하는 걸 피했어.
오즈 : 진심으로 상대하지도 힘을 추구하지도 않고 싸우려 들지 않아.
아키라 : 어째서인가요?
오즈 : …글쎄. 그런 남자라서겠지.
아키라 : (그렇기에 두 사람은 친구로 지낼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어…)
아키라 : 이건 무례한 질문일지도 모르겠지만 세상을 지배했다는 건 뭔가요? 사실인가요?
오즈는 세상을 지배한 못된 마법사. 그런 이야기를 여러 번 들었다. 그의 밑에서 자란 아서는 부정했지만.
나도 부정하고 싶었다. 오즈는 무서워 보여도 다정한 마법사였으니까.
하지만….
「운명을 바꾸는 한 조각」 5화
오즈 : 완전한 지배는 하지 못했다. 지배한 것은 세상의 절반뿐이야.
아키라 : …어째서요?
오즈 : 도중에 관뒀다.
아키라 : 세계 정복을?
오즈 : 그래.
나는 당혹감에 입을 다물었다.
세계 정복을 하려다가 도중에 관두었다. 애초에 왜 세상을 지배하려고 한 걸까?
오즈는 탐욕스럽지도 오기를 부리지도 않고 자기 과시욕이 강한 성격도 아니다. 아니면 옛날의 오즈는 달랐던 걸까?
그에 대해 물어보자 오즈는 느릿하게 눈을 찡그린 채 입을 다물어 버렸다.
화가 난 게 아니라 자문자답을 하고 있는 듯한 긴 침묵이다.
창문 너머의 태양이 구름에 가려지고 차의 김이 사라지고 정적에 귀가 익숙해지기 시작했을 무렵, 오즈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오즈 : 자유를 원했다.
아키라 : 자유…? 세상을 지배하면 자유로워질 것 같아서요?
오즈 : 그렇게 생각했지.
아키라 : 당신을 자유롭지 못하게 했던 것은 뭐였나요?
오즈 : 한마디로 표현하기는 어렵군.
아키라 : 한마디가 아니어도 괜찮아요. 자세히 가르쳐 주실 수 없을까요…?
오즈는 기억을 더듬는 것처럼 눈을 감았다. 긴 손끝으로 의자를 매만지며.
오즈 : …나를 죽이려는 마법사나 나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는 마법사. 나를 두려워하는 인간, 내 비호를 바라는 인간….
오즈 : 세상이 내 마음대로 된다면 모든 굴레는 사라질 거라고 믿었어.
오즈 : 하지만 굴레는 늘기만 하고 귀찮아져서 관두었다. 그 무렵에는 최강의 마법사라 불리고 있었지.
오즈의 눈빛에는 희미한 후회가 떠올라 있었다.
그래서 나도 물어볼 수 없었다. 당신의 야망의 희생이 된 사람들, 당신이 자유를 앗아간 사람들도 있었던 건 아닌지.
그 사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운명을 바꾸는 한 조각」 6화
아키라 : …지금도 자유를 원하나요?
오즈 : 글쎄…. 전혀 다른 것을 원하고 있는 듯싶기도 하군.
아키라 : 그건 어떤 건가요? 오즈가 바라는 형태로 살았으면 해요.
오즈는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살짝 긴장했다. 그의 깊은 눈빛에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았다.
그는 양손을 깍지 끼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
오즈 : 내 소원은 내가 이룬다. 네가 나를 이해하려고 하는 것은 알고 있어.
오즈 : 하지만 결코 너는 이해하지 못할 거다.
오즈 : 나로서도 설명하지 못하니까. 유구한 시간을 살아가며 세상과 호응하고 내 뜻대로 하늘을 부리는, 그 쾌락과 공포를.
오즈 : 수억만 개의 말을 동원해도, 너와 함께 나누고 싶어도, 만인이 내 이름을 알고 있다 해도….
오즈 : 누구도 나를 이해할 수는 없다.
스노우 : 그러한가, 오즈가 그런 말을….
아키라 : 저도 반성했어요…. 오즈를 알려고 하다니 주제넘었는지도 모르겠어요….
피가로 : 그 녀석은 말주변이 없으니까. 나도 이해했다고 생각하는데 이해하지 못했는지도 모르겠네.
피가로 : 그래도 우리가 아는 거라면 가르쳐 줄게.
아키라 : 감사합니다…. 스노우와 화이트, 피가로는 어떻게 오즈를 만났나요?
피가로 : 스노우 님과 화이트 님이 아이인 오즈를 데려왔지. 처음 오즈를 봤을 때는 무서웠어.
피가로 : 말도 안 하고 의사소통도 못해. 그런데 마력은 강대하잖아. 나도 모르게 둘한테 상담했을 정도야.
피가로 : 위험한 마법사가 될 것 같으니까 우리의 힘으로 돌로 만들 수 있을 때 돌로 만들어 두는 게 좋지 않겠냐고.
스노우 : 우리 피가로는 옛날부터 그런 데가 있었지.
화이트 : 하나 바지런히 돌봐준 것도 결국 피가로였지. 피가로는 그런 데가 있어.
피가로 : 방치하면 위험할 것 같아서…. 그 녀석 먹을 게 없으면 마나석을 먹으면 된다고 생각했거든요.
화이트 : 갈수록 점차 마음을 열게 되었어. 처음 내 이름을 불렀을 때는 감동하였지. 머리를 쓰다듬으려다 공격받았다마는….
아키라 : (맹수를 보호하는 느낌이네…)
「운명을 바꾸는 한 조각」 7화
스노우 : 오즈는 어울리지 못하고 금세 떠나 버렸지만, 오랜 세월 속에서 몇 번이나 재회했느니라. 시대가 변해도 오즈는 변치 않았다.
스노우 : 영원히 강자고 영원히 고독하지. 우리도 피가로도 사람과 부대끼며 살았지만 오즈는 늘 혼자였어.
화이트 : 피가로와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살던 시기도 있지 않았더냐. 그거는 우리도 정이 떨어지더구나.
피가로 : 그렇지만 살기 힘들어 보여서 불쌍했는걸요. 세계 정복이라는 게 살아갈 목표가 된다면 뭐, 그것도 괜찮겠지 싶어서요.
피가로 : 오즈와 함께 무언가를 한 적이 없다 보니 서로 여러 계획을 세우고 힘을 쏟거나 하는 것도 재미있었고….
스노우 : 여행 같은 것부터 시작하면 좋을 것을….
피가로 : 언젠가 끝을 맞이할 허망한 놀이라는 건 서로 그런대로 알고 있었어요.
피가로 : 오즈는 별로 세상을 원하지 않았어. 그 녀석이 무엇을 원했는지…. 지금이라면 조금 알 것 같지만.
아키라 : …그건 어떤 건가요?
피가로는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어딘가 애틋하고 쓸쓸한 기색을 내비치며.
피가로 : 현자님. 나도 스노우 님도 화이트 님도 오즈를 마음에 들어 하면서 각오하고 있었어.
피가로 : 언젠가 이 녀석의 변덕으로 죽게 될지도 모른다고. 하지만 아서는 그런 건 생각지도 않지.
피가로 : 카인이나 리케도. 그걸 뭐라고 부르는지는 모르겠어. 하지만 북쪽의 마법사에게는 불가능해.
피가로 : 자기보다 강한 마법사가 자신을 돌로 만들려고 하지 않는다니, 믿을 수 없고 믿고 싶지도 않거든.
아키라 : (아서를 만나서 오즈는 변한 거구나. 그런데 변하게 된 계기는 뭐였을까. 게다가…)
아키라 : (왜 중앙 국가에서 산 적이 없는 오즈가 중앙의 마법사로 선택받은 걸까.)
오즈 : 넘어진다.
아키라 : 앗…. 오즈….
오즈 : 걸으면서 책을 펼치지 마라. 위험하지 않나.
현자의 서를 펼친 채 걷고 있자 나를 잡아주는 것처럼 오즈가 팔을 뻗었다.
오즈 : …현자의 서를 쓰고 있던 건가. 아서도 백지 책을 선물한 후로 나를 쫓아다녔지.
아키라 : 백지 책? 일기장 같은 건가요?
오즈 : 그래. 아서는 책을 좋아했으니까. 책에서 조사한 내용을 적을 수 있도록 백지 책을 선물했다.
오즈는 희미하게 쓴웃음을 지었다.
오즈 : 아서는 기뻐하며 내게 질문 공세를 펼쳤어. 하늘은 왜 파란지. 눈은 왜 차가운지. 토끼 눈은 왜 빨간지….
아키라 : 아이다운 질문이네요. 오즈는 대답했나요?
오즈 : 답하지 못했다. 나는 세상에 관심이 없었으니까. 아서가 물어봐서 처음으로 공부했지.
「운명을 바꾸는 한 조각」 8화
아키라 : 오즈가 공부를요?
오즈 : 그래. 아서와 함께 책을 찾아봤다. 무르의 책도 읽은 적이 있어. 아이가 읽기에는 난해해서 중도에 좌절했다만….
아키라 : 무르는 학자였다고 들었어요. 그러면 학술서겠네요. 아서는 어릴 때부터 머리가 좋았군요.
오즈 : 그렇지.
아서를 칭찬하자 오즈는 기쁜 듯이 웃었다.
진정한 그의 미소를 본 것만 같아서 가슴이 따스해진다.
오래된 숲보다 긴 시간을 살아온 오즈나 세상을 손에 넣으려고 한 오즈를 이해하는 것은 어려울지도 모르지만….
아서를 소중히 여기는 오즈라면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키라 : 아서는 장난이 많다고 들었어요. 지금도 앞장서서 위험한 행동을 하니까 조마조마하죠.
오즈 : …그래.
아키라 : 왜 아서를 주운 건가요?
달빛이 반짝이는 밤의 안뜰에서 초목이 바람에 흔들린다.
우주의 끝에 있는 듯한 고독에서 한 걸음 다가서듯이 오즈는 입을 뗐다.
오즈 : …아서를 주운 것은 그저 변덕이다. 내버려 두면 돌이 되었겠지만 마력이 강한 아이였어.
오즈 : 그러면 키워서 돌을 손에 넣으려고 했다. 심심풀이로, 남에게 주기 아까워서지. 결코 구한 게 아니야.
오즈 : 하지만 나는….
오즈는 말을 끊고 고개를 떨구었다. 낮은 목소리를 떨면서 희미하게 쓴웃음을 짓는다.
그것은 행복한 헛웃음이었다.
오즈 : 아이가 얼마나 힘든지를 몰랐다. 자주 떠들고 곧잘 울고 금세 다치지. 금방 열이 나고 곧장 무모한 짓을 해.
오즈 : 몇 번을 내치려고 했는지…. 하지만 아서는 내 속셈 따위 모른 채, 내 이름을 부르며 내 모습을 찾았어.
「운명을 바꾸는 한 조각」 9화
오즈 : 내가 없으면 울고…. 안아 올려 주면 안심하고 웃었지. 내게 칭찬을 받으려고 무모한 모험만 하고….
기다란 손끝으로 머리를 쓸어 올리며, 오즈는 나와 눈을 맞추고 웃었다.
아련해질 정도로 사랑스럽게.
오즈 : 어린 시절의 아서는 자신을 매나 곰이라 착각하고 있는 한겨울의 나비와 같았다.
오즈 : 세찬 바람이나 흩날리는 눈송이에도 날아갈 힘을 잃어버릴 정도로 연약한데, 바다를 건널 수 있는 힘을 지녔다고 믿었지.
오즈 : 나도 믿게 해 주고 싶어졌다. 그래서 내가 아는 모든 것을 아서에게 가르쳤어. 모르는 것은 그와 함께 배웠고.
오즈 : 그리고 알게 되었다. 아득할 만큼 이 세상에 있으면서 나는 이 세상을 몰랐다는 것을.
오즈 : 왜 생명은 끝이 나는지. 왜 우리는 오래 사는지.
오즈 : 왜 눈물이 나오는지. 왜 배가 고파지는지. 왜 팬케이크는 실패하면 타는지.
울어 본 적이 있나요?
아키라 : 울어 본 적이 있나요?
오즈 : 기억하는 한 나는 없다. 하지만 아서는 잘 우는 아이였지.
오즈 : 나는 다른 아이를 모른다. 그래서 아이란 우는 존재일지도 모르지만 아서는 신기해했어.
오즈 : 눈물을 흘리고 싶지 않은데 멋대로 흘러나오는 건 어째서일까 하고.
그리운 듯이 오즈가 웃는다. 어느샌가 우리는 친구처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었다.
팬케이크, 실패했나요?
아키라 : 팬케이크, 실패했나요?
오즈 : 실패했다. 그런 건 간단히 구울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꽤 만만치 않더군.
농담을 하듯 오즈가 웃는다. 어느샌가 우리는 친구처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었다.
친구나 스승에게도 두려움을 샀던 이 사람은 줄곧 누군가가 자신이 곁에 있음으로써 안심하길 원했을 뿐인지도 모른다.
오즈 : 매일이 새로운 모험이었어. 내가 살아가기 싫증이 난 세상이라도 아서의 눈에는 빛나 보였던 거겠지.
「운명을 바꾸는 한 조각」 10화
아키라 : 어떤 모험을 했나요?
오즈 : 책에 쓰여 있던 모르는 이름의 꽃을 찾으러 여행을 떠난 적도 있었다. 묘한 이름이었던 탓에 아서가 보고 싶어 해서.
아키라 : 묘한 이름?
오즈 : 오즈다. 독이 있는 붉은 꽃이었어. 인류에게 오즈는 목숨을 앗아 가는 적의 이름이야. 그래서 내 이름이 붙은 거겠지.
오즈 : 하지만 아서는 기뻐하더군. 커다랗고 강해 보이는 예쁜 꽃이라며….
달이 구름에 가려지고 어둠이 깊어진다. 오즈의 옆모습에서도 미소가 사라져 있었다.
그는 자신의 손등을 만지며 절망의 구렁을 들여다본 듯한 두려움을 떠올리고 있었다.
문득 나는 생각해 냈다. 토비카게리 사건이 일어난 밤, <거대한 재앙>을 노려보던 그의 말을.
'네 뜻대로 흘러가게 두지 않겠다.'
오즈 : …현자여. 쌍둥이의 예언은 결코 빗나가지 않는다. 그 쌍둥이가 예언한 적이 있지.
오즈 : 어떤 자가 현자의 마법사로 선택받아 <거대한 재앙>의 전투 중….
오즈 : …목숨을….
오즈의 목소리가 갈라지고 떨린다. 그 순간 매서운 바람이 스치고 지나갔다.
강처럼 흘러가는 먹구름이 증오에 소용돌이치는 것처럼 달을 가린다.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바람은 오즈의 마음 그 자체일지도 몰랐다. 언젠가 스노우가 한 말이 머릿속을 스쳤다.
'잘도 말하는구먼. 본인은 강제로 숙명을 바꾸어 놓고는.'
오즈 : ….
북쪽 국가에서만 살아온 중앙의 마법사 오즈는 그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침묵에서 전해지는 것이 있다. 그는 무언가를 두려워하고 있다.
그제야 나는 그의 소원을 알았다. 소원의 전부는 모르지만 내가 해야 할 일은 알 수 있었다.
순간적으로 나는 목청을 높여 외쳤다. 공포를 부추기는 무서운 바람 소리에 지지 않도록.
아키라 : …괜찮아요. 오즈가 두려워하는 것이 있다 해도 반드시 괜찮을 거예요!
오즈 : ….
아키라 : 당신이 가르쳐 줬어요. 당신과 자신을 믿으라고…. 그러니까 무조건 괜찮아요!
어둠 속에서 오즈가 살짝 숨을 삼킨다. 내 말은 근거도 없고 무책임했다.
그래도 서서히 바람이 잦아들고 달빛이 비쳐 들기 시작했다.
놀랄 만큼 미덥지 못한 얼굴을 한 오즈가 나를 바라보고 안심한 듯이 웃는다.
그것은 아마도, 분명 신뢰의 한 조각이다. 당신이 있으면, 내가 있으면 괜찮아. 두려운 일은 일어나지 않아.
오즈 : 고맙다, 아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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