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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벤트 1/달밤의 성의 쇼콜라트리

이벤트 스토리|제9화

by Berne 2022. 4. 8.

아키라 : 파우스트.

파우스트 : …아, 깜짝 놀랐군. 현자인가.

아키라 : 뭘 하고 있나요?

파우스트 : 아무것도 안 하고 있었더니 살로네제가 권했거든. 과일을 따서 바구니에 담아 보라고.

파우스트 : 모두의 눈을 피해 몰래 즐기고 있었던 게 아니야. 성주의 친절을 거절하는 것은 무례하니까.

그것은 아마도 사실이겠지만 핑계를 많이 대는 파우스트다웠다. 그 역시 과자의 성을 즐겨도 별로 상관없는데.

아키라 : 그러면 마침 잘 만났네요. 포도를 바구니에 담는 걸 같이 봐도 될까요?

파우스트 : 그래.

파우스트는 줄기를 자르고 포도를 수확했다. 신선한 열매에 상처가 나지 않도록 조심스레 바구니 안에 넣는다.

그러자 순식간에 포도가 마르더니 맛있는 건포도로 변해 갔다. 마지막에는 초콜릿이 코팅된다.

아키라 : 재미있네요! 오렌지도 한번 보여 주세요.

시간을 빨리 감은 것 같은 마법을 보고 아이처럼 들뜬다. 파우스트는 아무 말 없이 바구니와 가위를 내게 떠넘겼다.

화나게 한 줄 알았지만 아니었다. 다정한 눈빛으로 미소 짓고 있다.

파우스트 : 그렇다면 네가 수확하면 되겠군. 해 보도록 해.

과일과 초콜릿 내음이 뒤섞이고, 달밤의 바다에서 파도 소리가 울린다. 파우스트의 목소리는 선생님다운 온화한 기색을 띠었다.

가위와 바구니를 내게 떠넘기고 그는 어디론가 떠나 버릴 만도 했다. 파우스트는 남과 어울리기 싫어하고 혼자를 좋아한다.

하지만 그의 기척은 사라지지 않았다.

파우스트 : 거기를 자르면 된다.

아키라 : 거기? 이 가지 말인가요?

파우스트 : 그래. 수확을 해 본 적이 없는 건가.

아키라 : 네, 별로…. 고구마 캐기라면 해 본 적이 있지만요. 파우스트는 경험이 있나요?

파우스트 : 혼자 살았으니까.

아키라 : (혼자 살면 수확이 당연하구나…. 원래 세계에 있을 때 혼자 사는 것과는 사뭇 판이하네…)

오렌지를 바구니에 담자 아까처럼 천천히 수분이 말라 가더니 산뜻하고 맛있는 오랑제트가 완성되었다.

조금 더 그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 말을 걸어 본다.

아키라 : 과일은 좋아하나요?

파우스트 : 그냥 그래. 피곤할 때는 맛있게 느껴지지. 냄새도 마음이 편안해지고.

 

파우스트는 한 송이 더 포도를 수확했다. 바구니에 담지 않고 다른 그릇 위에 놓은 뒤 손가락으로 한 알을 딴다.

덥석 입 안에 머금고 능숙하게 껍질만 쏙 뱉어 낸다. 놀라울 정도로 자연스럽고 기품 있는 몸짓이었다.

파우스트 : 나는 이쪽이 더 마음에 드는군. 살로네제에게는 미안하지만 자연의 맛이 좋아.

아키라 : 저도 먹어도 될까요?

파우스트 : 먹도록 해.

파우스트 손에서 포도를 한 알 받아 입 안에 넣는다.

그처럼 능숙하게 먹지는 못했지만 싱싱하고 무척 달콤했다. 과일 초콜릿도 정말 맛있다.

아키라 : 저는 둘 다 좋아요. 하나만 못 고르겠네요.

파우스트 : 괜찮아. 고를 필요도 없고.

파우스트는 내 감상을 듣고 웃었다. 오늘 밤 그는 평소보다 편안해 보였다. 바구니 안을 들여다보며 그가 말했다.

파우스트 : 히스와 네로에게 가져다줘야지. 자기 게 없다고 화낼 테니 시노 것도.

아키라 : 오즈도 같은 말을 했어요. 기왕이면 파우스트도 21명 몫의 선물을 만들어 주면 안 될까요?

파우스트 : 다른 나라의 녀석들 몫도?

아키라 : 네. 파우스트의 선물이라고 하면 다들 기뻐할 거예요.

파우스트 : 흐음…. 그러면 조금 더 수확해 두지.

파우스트는 다시 과일로 손을 뻗었다. 나는 그에게 인사를 하고 발코니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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