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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벤트 1/1st anniversary 너에게 꽃을, 하늘에 마법을

이벤트 스토리|제15화

by Berne 2024. 7. 14.

정원에서는 시노와 미노타우로스가 싸우고 있었다.

마구간보다 두세 배는 더 되는 우람한 거구.

게다가 소의 머리를 단 괴물이 크고 무서운 도끼를 휘두르고 있다.

사나운 움직임과 달리 미노타우로스는 감정이 없는 고요한 검은 눈을 하고 있었다.

시노 : 흥…. 옛날의 나 같군.

미궁으로 변한 어둠의 정원을 시노는 달려 나갔다.

미노타우로스로부터 도망치는 줄 알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울타리를 돌아 사각지대에 몸을 숨기고 쫓아온 미노타우로스에게 공격을 가한다.

시노 : 《matztzah sudipas》

시노의 큰 낫은 정확하게 미노타우로스의 목을 잡아내고 있었다.

보통 짐승이라면 일격에 목이 날아갔을 것이다. 하지만….

시노 : …윽, 젠장…!

목 가죽에 상처를 냈을 뿐, 미노타우로스는 고개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큰 낫에 가해진 원심력으로 수레바퀴처럼 허공을 빙글 날면서 시노는 땅에 착지한다.

그리고 다시 미궁 정원을 향해 내달렸다. 울타리나 큰 나무에 숨어서 또다시 틈을 엿본다.

숨을 헐떡이면서도 시노는 덫을 놓는 사냥꾼처럼 냉철했다.

신중하게 시간을 충분히 들여서 미노타우로스의 체력을 계속 고갈시키면 승기가 찾아올지도 모른다.

내가 그렇게 생각한 순간, 비극은 일어났다.

시노 : …!

시노의 기척을 알아차린 건지, 시노가 몸을 숨긴 울타리까지 함께 묵직한 도끼로 도려내 버렸다.

재빨리 시노는 피했지만 자세를 잡는 것이 늦었다.

시노 : 《matztzah sudipas》 …앗!

내리찍힌 미노타우로스의 도끼가 정면으로 시노의 몸을 가른다.

시노 : …으윽… 큽.

그대로 옆구리를 얻어맞고 시노는 몇 미터나 내동댕이쳐졌다.

일어나려고 발버둥 치는 시노 쪽으로 쿵쿵 발소리를 울리며 미노타우로스가 맹렬하게 덤벼든다.

무심코 비명을 질렀다.

목소리가 닿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아키라 : 시노! 도망쳐요…!

오비시우스 : 소용없는 짓이야. 지상 최강의 전사인 미노타우로스에게선 도망칠 수 없어.

아키라 : …당신은 대체 뭐가 목적인가요!?

오비시우스 : 가장 사랑하는 아내와 재회하는 거야.

아키라 : 아내…?

오비시우스 : 가시 마녀 탈리아.

오비시우스 : 금지된 마술에 실패한 탓에 저주를 받고 가시에 사로잡힌 불쌍한 마녀야.

오비시우스 : 그녀에게 접근하면 그녀의 의지에 반해 가시가 나타나서 날뛰고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입혀.

오비시우스 : 탈리아는 저주받은 자신을 부끄러이 여기고 고성에 몸을 숨긴 채 지냈어. 그리고 나를 만났지.

오비시우스 : 내 인형극은 고독한 그녀의 마음을 달래고, 그녀의 미소는 내 고독을 달랬어.

오비시우스 : 시시한 세상, 어리석은 군중으로부터 해방된 곳에서 우리는 행복하게 살아갈 예정이었어.

오비시우스 : …그런데 그 남자가 부추긴 바람에 탈리아는 신세를 망치고 말았어!

아키라 : …그 남자…?

오비시우스 : 세기의 지혜자, 대천재라 불린 철학자 무르다!

오비시우스 : 그 녀석은 내 아내의 마음을 빼앗아 편리한 연구 재료로 삼아서 실컷 써먹고는 버렸어.

오비시우스 : 아무것도 모르는 탈리아에게 가시를 엮어 달까지 도달하는 길을 만들게 하려고 했지!

오비시우스 : 탈리아는 고성에서 정신이 팔려 가시를 엮었고 이내….

오비시우스 : 가시나무 고성, 그 자체가 되어 버렸어….

아키라 : 가시나무 고성, 그 자체…?

오비시우스 : 전부 그 남자 때문이야! 대천재님이 내 아내와 내 사랑을 망가뜨려 놨어!

아키라 : 그럴 수가…. 무르가 그런 짓을 할 리는…. ….

아키라 : (…지금의 천진한 무르라면 몰라도 영혼이 부서지기 전의 무르는 모르겠어…)

아키라 : …했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죄 없는 사람들까지….

그때 어둠 속에서 웃음소리가 났다.

조롱하는 데 익숙한 무례하고 매력적이며 달콤한 목소리.

퍼플 사파이어색 돌 파편이 강한 빛을 머금는다.

이윽고 그 신비한 보랏빛은 사람의 형태를 띠어 갔다.

??? : 너무하네, 현자님.

??? : 당신에게는 세상에 흩어진 어느 하나의 내가 설명했을 텐데.

오비시우스 : …! 너는….

무르 : 내가 사랑하는 건 <거대한 재앙>.

무르 : 저 아름다운 달뿐이라고.

무르와 똑같은 얼굴을 한 눈앞의 인물은 무례하게 느껴질 정도로 우아한 인사를 올렸다.

그리고 나에게 미소 지어 보인다.

무르 :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무르 하트. 무르라고 불러 주세요. 현자님.

 

리케 : …윽, 왕궁의 정원, 미로처럼 되어 있네요.

미틸 : 아까까지는 이렇게 되어 있지 않았는데….

미틸 : 앗, 히스클리프 씨, 이쪽으로…. 괜찮으세요? 피곤하진 않으신가요?

히스클리프 : …괜찮아. 신경 써 줘서 고마워.

미틸 : 아니에요.

히스클리프 : 그런데…. ….

리케 : 왜 그러는 건가요, 히스클리프.

히스클리프 : …미안하지만 이 앞은 둘이서 도망쳐 주지 않을래?

미틸 : 히스클리프 씨….

히스클리프 : 시노를 내버려 둘 수 없어. 여유 있는 척했지만 그 녀석은….

히스클리프 : 만약 확실하게 공로를 세울 수 있다면 내가 보고 있길 원했을 거야. 나를 도망치게 하지 않고.

미틸 : …시노 씨는 반드시 따라잡을 거라고 했어요. 믿도록 해요.

히스클리프 : 약속을 했어, 시노와.

리케 : 약속을?

미틸 : 마법사는 약속을 하면 안 되는데요…?

미틸 : 약속을 깨면 마법을 쓸 수 없게 되니까요.

리케 : 무척 엄중한 각오를 하고 나눈 약속인 거겠죠…. 그렇죠, 히스클리프.

히스클리프 : …그렇지 않아. 스승에게 속아서…. 서로 아무것도 모른 채 맺었어.

히스클리프 : 서로를 지키겠다고. 그러니까…. 나도 시노를 지켜야 해.

히스클리프 : 파우스트 선생님에게 들은 말, 주군으로서의 마음가짐 같은 것도 아직 잘 모르겠지만….

히스클리프 : 그래도…. 나는 가야 해. 미안.

미틸 : ….

리케 : 왜 그래요, 미틸. …안색이….

미틸 : …히스클리프 씨. 사실 시노 씨에게 부탁받은 거예요.

히스클리프 : 뭘….

미틸 : 저희로는 미노타우로스에게 이길 수 없어요.

미틸 : 히스클리프 씨를 부탁한다고. 도망쳐 달라고요.

히스클리프 : …무슨….

히스클리프 : …읏, 저 녀석…! 정말 열 받네…!!

미틸 : 화, 화내지 마세요! 시노 씨도 히스클리프 씨를 위해서….

히스클리프 : 알고 있지만…!

리케 : 미틸은 왜 말하지 않았던 건가요?

미틸 : 시노 씨의 기백에 눌린 것도 있지만…. 기뻐서 그랬어요.

미틸 : 저를 제구실을 할 수 있다고 인정해 줘서요.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았는데….

미틸 : 저에게 맡긴다고 해 줬어요. 그래서…. 기뻐서….

히스클리프 : …. 그 논리로 말하자면 나는 인정하지 않는다는 거잖아.

미틸 : 화, 확실히 그렇게 될 수도 있겠지만…. …화났나요?

히스클리프 : 미틸에게는 화나지 않았어.

리케 : 하지만 손이 떨리고 있습니다, 히스클리프….

히스클리프 : 너무 열이 뻗쳐서…. 현기증이 날 정도로 화난 건 처음이야. 미노타우로스 따위 아무래도 좋아.

미틸 : 드, 듬직하네요.

리케 : 히스클리프의 마음이 평온할 수 있기를. 축복을 빌어요.

히스클리프 : 나는 시노에게 돌아갈게. 두 사람은….

리케 : 함께하겠습니다. 신의 사도로서 현자님의 마법사로서 동료의 위기는 그냥 넘어갈 수 없습니다.

리케 : 그리고 써 보고 싶은 도구가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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