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 : 참으로 아름다운 종이로구나. 아마도 이것이 무도회를 알리는 종일 테지.
미스라 : 다음은 망령 차례입니다. 빨리 종을 울려 주십시오.
화이트 : 하면 귀여운 망령 화이트가 보내는 무도회 알림이니라!
화이트 : 《nos communia》
화이트가 주문을 외우자 종소리가 드높이 울려 퍼졌다.
무지개색 종은 빛의 입자가 되어 홀 안에 쏟아져 내린다.
아키라 : 예쁘다….
이윽고 여운을 남기며 사라져 가는 종소리에 맞춰 홀 안쪽에 천천히 중후한 문이 나타났다.
아키라 : 안으로 들어와도 된다는 걸까요…?
화이트 : 호호호. 왠지 즐거워지기 시작한 게야.
아서 : 저쪽은 댄스홀인 것 같네요. 이렇게 정성스럽게 준비해서 열리는 무도회라면 분명 훌륭한 시간이 되겠지.
라스티카 : 네, 거기다 의식을 진행할 때마다 무도회 주최자의 기쁨과 기대가 느껴지는 것만 같습니다.
라스티카 : 분명 영애들도 이 무도회를 진심으로 애타게 기다리고 있던 거겠죠.
히스클리프 : 그렇겠죠…. 생전의 꿈이라고 했고, 오늘이야말로 그게 이뤄지면 좋겠네요.
네로 : 히스가 그 시트의 댄스 상대가 되어 주겠다는 거야?
히스클리프 : 어!? 그런 중요한 역할을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아서 : 분명 괜찮을 거야. 히스클리프는 어떤 파티에 가도 참가자 중에서 제일 멋있다고 시노가 그랬어.
네로 : 하하, 그 녀석답군.
마침내 기다리고 기다리던 무도회가 열린다. 그 기대감에 부풀어 있는 것은 여기에 있는 마법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조금은 긴장감이 풀린 듯 즐거워 보이는 모두의 대화를 바라보고 있자 옆에서 작고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렸다.
오웬 : 지루해.
아키라 : 네?
오웬 : 현자님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오웬 : 즐거운 무도회가 열렸고, 망령 아가씨들은 마음이 흡족했습니다. 그리고 무사히 미스라는 기적의 캔디 애플을 손에 넣었답니다….
오웬 : 이런 시시한 동화, 갓 태어난 아기조차 안 웃을걸. 나는 좀 더 잔혹하고 암울한 이야기인 게 좋아.
미스라 : …쓸데없는 짓을 했다간 죽이겠습니다, 오웬.
미스라 : 자, 어서 안으로 들어가 주십시오. 다음 의식이 잘 진행되면 댄스홀에서 무도회가 열릴 테니까요.
문을 열면 그 너머에 있는 눈부신 댄스홀에서는 열세 명의 아가씨가 우리를 목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는 걸까?
무섭기도 하고 떨리기도 하는 그런 이상한 기분으로 발을 내디딘다.
미스라 : …뭡니까, 이건.
예상과는 달리 텅 비어 고요한, 밤하늘처럼 아름다운 천장을 가진 댄스홀.
장식이 달린 샹들리에가 수상하게 그리고 어딘가 쓸쓸하게 홀을 우두커니 비추고 있다.
방 중앙에는 어릴 적에 그림책에서 본 것 같은 유리관만이 그저 놓여 있었다.
박쥐 : 끼이익!
문에서 날아든 박쥐가 우리의 머리 위를 지나서 관 위를 빙글빙글 맴돈다.
아키라 : 어, 아까 그 박쥐….
박쥐 : …!
하지만 내 목소리에 놀랐는지 금세 관의 그림자로 숨어 버렸다.
아키라 : (그렇게 큰 소리를 냈나…?)
그러자 관 주변으로 어디선가 너풀너풀 아까의 시트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열두 명의 시트들은 눈물을 흘리는 것처럼 작게 떨고 있었다. 소중한 사람을 아끼는 듯이, 이별을 슬퍼하는 듯이.
아서 : 그녀들은 울고 있는 건가? 아까의 종소리로 무도회가 열렸을 거야. 그런데 이건 꼭 장례식 같아….
파우스트 : …어쩌면 그 전제가 틀렸는지도 모르겠군.
파우스트 : 복장, 음악, 요리…. 그리고 화이트가 울린 종소리가 사실은 장송의 종이었다면….
네로 : 즉 우리는 무도회가 아니라 애도 자리를 준비하고 있었다는 거야?
히스클리프 : 그러면 저 관은 열셋째의…? 동생의 죽음을 슬퍼하고 있다는 건가요?
파우스트 : 아직 그렇다고 결정이 난 건 아니지만….
아키라 : (확실히 무도회라기보단 꼭 장례식 같은 슬픈 분위기야…)
우리의 뒤를 따라온 해골들도 천천히 홀로 들어온다.
그대로 그들은 시트들에게 다가가더니 위로하듯 다정하게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시트들은 해골을 알아차리더니 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져 달아나 버렸다.
네로 : 잠깐, 저거 괜찮은 거야?
라스티카 : 그녀들은 정말로 조심성이 많군요.
신사적인 태도를 고수하는 해골들은 몇 번을 달아나도 계속해서 손을 내민다.
다정하게 정중한 몸짓으로. 그녀들이 마음을 허락해 주는 것을 참을성 있게 계속 기다리는 것처럼 보였다.
아키라 : (동생을 잃고 슬퍼하는 그녀들의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려는 걸지도 모르겠어…)
오웬 : 해골과 시트의 촌극 같은 건 아무래도 좋아. 그보다 캔디 애플은?
미스라 : 이 책, 뒷부분의 글자가 흐릿해서 읽을 수가 없단 말이죠.
미스라 : 보라색 모자와 오렌지색 무언가, 라고 적혀 있는 것 같으니 당신과 파우스트가 뭔가를 하면 무도회가 시작되는 게 아닐까요.
오웬 : 그게 뭐야…. 애초에 오렌지색 무언가라니,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나를 데리고 온 거야?
파우스트 : 설마 나는 모자를 쓰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선택된 건가.
미스라 : 뭐든지 좋으니까 해 보십시오. 아니면 당신들이 이 책을 해독하시죠. 저는 이제 졸려서 머리가 안 돌아가거든요.
미스라 : 도움이 안 된다면 죽여도 좋습니다.
아키라 : 미스라, 진정해 주세요.
아키라 : 어쩌면 아까의 사과처럼 뭔가 장치가 있을지도 몰라요. 다 같이 생각하면 분명….
오웬 : …있잖아, 저게 기적의 캔디 애플 아니야?
미스라 : 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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