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지의 유적」 1화
아키라 : 중앙 탑에 도착했어요. 오늘 중앙의 마법사 여러분은 기지의 유적에 갈 거예요.
리케 : 기지의 유적…. 이름만은 들은 적이 있습니다.
리케 : 저는 가 본 적이 없지만, 신도분들이 순례를 하러 갔습니다. 축복의 구슬을 손에 넣기 위해서요.
아키라 : 축복의 구슬?
리케 : 네. 반짝이는 검은 구슬로, 거울처럼 빛을 반사하여 무지개 같은 무늬가 있다고 합니다.
아서 : 기지의 유적은 '고대 영웅담'이라고 중앙 국가에 전해 오는 세 권으로 구성된 모험의 서에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리케 : 모험의 서? 모험에 대해 기록한 읽을거리인가요?
아서 : 맞아. 작성한 인물은 알 수 없지만 옛 전설이 기록으로 남겨져 있어.
아서 : 기지의 유적은 남쪽 황야의 끝자락에 위치한 이천여 년 전의 고대 도시 유적지야.
아서 : 이상한 소문도 있어서 다른 말로는 마법사가 떨어져 나가는 장소라고….
리케 : 네…?
카인 : 나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 그래서 가까이 가지 않으려고 했는데…. 거기서 어떤 이변이 일어난 거야?
아키라 : 기지의 유적 상공 근처에서 커다란 짐승이 미친 듯이 몸부림치다가 낙하하는 것을 목격했다고 해요.
오즈 : …<거대한 재앙>의 영향으로 되살아난 마법 생물인가.
아키라 : 그럴지도 모르겠어요…. 위험한 건 아니면 좋을 텐데요.
리케 :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기지의 유적을 조사하러 가죠. 맞다, 현자님.
리케 : 저는 글자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저도 모험의 서라는 것을 써 보고 싶어요. 현자님도 함께 어떠신가요?
리케 : 세 권이나 되는 '고대 영웅담'처럼 모험의 서가 많이 늘어나면 모두와의 유대감도 강해질 것 같거든요.
아키라 : 좋네요. 수수께끼가 많은 유적지인 듯하니까 조사하고 기지의 유적에서 모험의 서를 써 보도록 해요.
리케 : 네! 그러면 출발해요, 현자님!
「기지의 유적」 2화
아키라 : 저기가 기지의 유적….
카인의 빗자루 뒤에 탄 채로, 나는 눈 아래에 펼쳐진 유적지를 내려다보았다.
약간 높은 언덕만 한 바위 표면을 따라 여러 유적이 계단처럼 늘어서 있다. 근처에는 광야뿐이고 아무것도 없다.
카인 : 저 건너편 산맥을 넘으면 남쪽 국가야. 남쪽 국가의 개척을 위해 떠난 여행자들도 기지의 유적은 피해서 지나갔다고 알려져 있어.
아서 : 여기는 그랑벨 왕조의 수천 년 전에 번영한 왕조가 있었다고 합니다. 홍수나 지진으로 멸망했다고 해요.
별안간 오즈가 경고를 보냈다.
오즈 : 조심해라.
무엇을 조심하라는 건지 되물으려던 순간, 나는 돌연 카인과 함께 아래로 곤두박질쳤다.
아키라 : …!? 카인…!?
카인에게 매달리며 얼굴을 들여다본다. 그는 거꾸로 뒤집혀서 빗자루를 움켜잡은 채 눈과 입을 헤벌리고 있었다.
리케 : 현자님! 카인!
아서 : 지금 구해 드리겠습니다!
상공을 올려다보니 바람을 가르면서 아서가 다가왔다.
그가 뻗은 손을 잡으려던 순간….
용맹함을 발산하던 아서의 눈동자도 멍하니 흐려졌다. 축 늘어져서 거꾸로 뒤집혀 추락해 간다.
아키라 : 아서…!
아키라 : (둘 다 어떻게 된 거야!? 마법사가 떨어져 나간다는 건…. 낙하한다는 뜻이었어!?)
오즈 : 《voxnox》
땅에 충돌할 뻔한 찰나, 오즈의 주문이 들렸다. 추락사를 면하고 나는 한숨을 돌린다.
하지만 다음 순간…. 나와 카인과 아서는 발사한 로켓처럼 세차게 하늘로 상승했다.
아키라 : 으아아아악…!
「기지의 유적」 3화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지상을 내려다보니 오즈도 혼란스러운 듯이 자신의 지팡이를 바라보고 있다.
아키라 : (혹시 마법이 제어되지 않는 건가!?)
마법사에게는 매우 큰일이다. 창백하게 질린 나와 정반대로 어째선지 아서와 카인은 신바람이 났다.
아서 : 후후…. 구름….
카인 : 아하하! 구름!
아키라 : (왜 서로 장난치고 있는 거야!?)
빗자루에도 타지 않고 구름에 손을 뻗고 있다. 여러 번 불러도 정신을 차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러던 참에 다시 중력에 끌려 낙하했다.
아키라 : (죽겠어…!)
리케 : 《sunretea edif》
그때 리케의 주문이 울려 퍼졌다.
몸이 사뿐 바람에 싸여 우리는 천천히 떨어져 갔다. 리케의 마도구인 랜턴 빛에 이끌리듯이.
나는 리케를 향해 큰 소리로 전했다.
고마워요, 리케!
아키라 : 고마워요, 리케!
진지하게 우리를 하강시키던 리케는 그 말을 듣고 살짝 자랑스러운 듯이 미소를 머금었다.
리케 : 별말씀을요. 현자님을 도와드리는 것은 마법사인 제 역할인걸요.
조심해요, 리케!
아키라 : 조심해요, 리케!
내 목소리를 듣고 리케는 진지한 표정을 더욱 다잡으며 마도구를 야무지게 바라보았다.
리케 : 괜찮습니다, 맡겨 주세요. 현자님과 아서 님과 카인은 제가 지켜 드리겠습니다!
오즈는 지팡이를 들어 올리려다가 유적지 바닥에 내려놓았다.
두 팔을 뻗어 나를 받는다. 리케도 달려와 주었다.
리케 : 괜찮으신가요!? 현자님!
아키라 : 아, 네…. 그럭저럭….
리케는 안도의 숨을 내쉬더니 사랑스러운 눈썹을 치켜세우고 모두를 돌아보았다.
리케 : 정말! 어떻게 된 건가요, 셋 다! 정신 차리세요!
리케 : …어라?
문득 리케는 웅크려 앉았다. 무언가를 알아차린 것처럼 유적지 바닥에 깔린 검은 돌을 만진다.
반질반질한 검은 돌바닥을 문지르자 거울처럼 빛을 튕겨 냈다.
차원의 왜곡 같은 일곱 빛깔의 알록달록한 무늬를 띠면서.
리케 : 혹시…. …이게 축복의 구슬의 원석…?
「기지의 유적」 4화
오즈 : 붕괴별의 돌이다.
리케 : 붕괴별의 돌…?
오즈는 검은 돌바닥 위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는 양옆에 드러누운 아서와 카인을 안고 있었다.
두 사람은 취한 것처럼 키득키득 즐겁게 웃으면서 주문을 외워 손바닥에 빛을 모은다.
아서 : 후후…. 《pernoctant nix zo》
카인 : 아하하…. 《gladius procella》
천진하게 빛 구슬을 서로 부딪치려는 두 사람의 손바닥을 오즈가 동시에 막았다. 오즈의 손안에서 빛이 흩어져 간다.
그 모습을 보고 아서와 카인은 데굴데굴 뒹굴면서 웃고 있었다.
오즈 : 옛날에 들은 적이 있다. 붕괴별의 돌은 마법 생물이나 마법사를 고양시키고 흥분시키고 황홀하게 하고 편안하게 만든다고.
오즈 : 치료나 심신 해방에 쓰기도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마음이 폭주해서 흉포해지기도 하지.
만취한 것처럼 웃으면서 오즈의 머리카락을 당기는 아서와 오즈의 신발을 벗기려는 카인.
헤롱헤롱 꿈꾸는 듯한 그들의 모습을 보고 나는 확신했다.
리케 : 그런 효과가…? 왜 저는 멀쩡한 건가요?
오즈 : 원래 효과가 없는 자도 있지만 늘 사용해서 내성이 생기는 자도 있어. 축복의 구슬이라는 것이 붕괴별의 돌이라면….
심각한 얼굴로 설명하며 오즈마저도 검은 돌 위에 누워 버렸다. 리케가 어깨를 들썩이며 꾸짖는다.
리케 : 정말, 오즈까지! 똑바로 정신을 차리세요!
오즈 : 괜찮아. 금방 익숙해질 거다…. 여기서 움직이지 마라. 위에 그게 있어. 그거 말이야, 그…. 거대하고 강한….
리케 : 그거, 그거, 하면 모릅니다. 이제 됐어요. 저 혼자서 유적을 조사하고 오겠습니다.
아키라 : 기…, 기다려요, 리케!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 버린 리케의 뒤를 쫓아서 나는 달려 나갔다.
「기지의 유적」 5화
리케 : 정말이지…. 다들 칠칠치 못하다니까요.
꾸짖는 투로 말하면서도 리케는 어딘가 불안한 모습이었다.
그럴 만도 하다. 마법사에게 기묘한 효과가 있는 돌을 교단 사람들이 모시고 있었으니 말이다.
리케 : …사제님은 알고 계셨던 걸까요. 저는 붕괴석의 구슬 때문에 저도 모르게 꿈을 꾸는 듯한 기분으로 있던 걸까요.
아키라 : 리케….
리케 : 사제님도 신도분들도 저를 더러운 것들로부터 지켜 주셨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적절한 말을 찾지 못한 채, 나는 리케와 함께 유적의 계단을 올라갔다.
아키라 : (리케는 자신이 자란 교단을 믿고 있어. 속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하기 싫겠지…)
리케 : …이런 건 알고 싶지 않았습니다. 몰랐다면 망설임도 생겨나지 않았겠죠.
리케 : 망설임 없이 대사제님들을 따르고 사람들을 인도할 수 있었을 거예요. 바깥세상 같은 건 몰랐으면 좋았을….
리케의 말이 도중에 사라졌다. 유적 계단을 다 올라간 그의 얼굴에 경악이 떠오른다.
리케의 시선 끝을 따라간 나도 할 말을 잃었다.
계단 끝에 보인 유적의 검은 돌바닥 위에 대형 비행기만 한 크기의 생물이 선잠을 자고 있다.
집을 통째로 삼킬 수 있을 법한 커다란 얼굴…. 신비한 청회색 비늘…. 바람에 살랑이는 긴 수염….
오금을 못 펼 정도로 압도적인 존재감.
드래곤이다.
리케 : …굉장하다….
리케가 숨을 죽였다. 선명한 초록색 눈은 미지와의 조우에 경외하여 떨면서도….
순수한 감격으로 눈부시게 빛나고 있다.
몰랐으면 좋았을 거라고 말하려던 바깥세상을 가리키며 웃고 있다.
리케 : 굉장해요! 현자님, 보세요! 어쩌면 이렇게 커다란 생물일까요!
아키라 : 조, 조용히 하는 게…! 깨우면 위험하지 않을까요!?
리케 : 위험한가요?
습하고 미지근한 바람이 불어와서 나는 흠칫했다.
드래곤의 콧김을 맞으며 조심조심 고개를 든다.
빨려 들어갈 만큼 아름답고 신비로운 연녹색 거대한 눈동자가 떠져 있었다.
순간 죽음을 예감했다. 그런데도 마음속으로는 들떠 있었다. 공포와 호기심과 감격에 몸이 얼어붙는다.
대체 무슨 세상에 와 버린 걸까.
내가 무슨 순간을 목격하고 있는 걸까.
리케 : …예쁘다….
커다란 입을 벌리고 큰 소리로 한 번 울더니 드래곤은 하늘 저편으로 사라져 버렸다.
「기지의 유적」 6화
아서 : 그래. 리케는 드래곤을 봤구나. 나도 보고 싶었는데.
리케 : 정말 굉장했어요! 아서 님과 카인은 괜찮은가요?
카인 : 응. 개운한 기분이야. 푹 자고 일어난 날의 아침 같아.
붕괴별의 돌에서 떨어지자 아서와 카인은 상쾌한 표정이 되어 있었다.
아키라 : (캣닢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한 고양이의 얼굴이야…)
아서 : 마법사들이 추락하지 않도록 주지시켜야겠네. 그건 그렇고 리케는 대단한걸.
리케 : 제가요?
카인 : 맞아. 우리가 이상해진 동안에도 현자님을 지켰잖아?
아서와 카인에게 칭찬을 받고 리케는 기쁜 듯이 등을 쭉 폈다. 득의양양해서 미소 짓는다.
리케 : 네. 오즈가 말하기로는 저는 내성이 있다는 듯합니다. 그렇죠, 오즈.
오즈 : 그래.
아까 리케에게 상처를 준 사실도 지금은 리케를 자랑스러운 기분으로 만들고 있다. 그 점이 나는 기뻤다.
리케 : 아…! 보세요, 현자님! 하늘에 드래곤의 수염이…!
아키라 : 정말이네요…. 하늘을 둥둥 떠다니고 있어…. 빠진 걸까요?
리케 : 마법으로 여기로 끌어당겨서 선물로 가지고 돌아가죠.
리케 : 미틸에게 보여 줘야겠어요!
실컷 들뜬 목소리로 웃으면서 리케가 즐거운 듯이 랜턴을 내건다.
리케 : 《sunretea edif》
앞으로 그가 알아갈 세상이 멋진 것이기를, 나는 그렇게 기도했다.
- マタタビ. 정확히는 캣닢이 아니라 캣닢과 비슷한 효능을 지닌 개다래나무.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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